김해시보

김해시보 제 1064 호 35페이지기사 입력 2024년 07월 22일 (월) 09:55

제263회 김해시의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 송유인 의원

월봉서원 유물전시관, <옛,책박물관> 건립을 시장님께 엄숙히 건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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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유인 의원

존경하는 김해시민 여러분, 안선환 의장님과 선배·동료의원 여러분

그리고 홍태용 시장님과 관계 공무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북부동과 생림면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시의원 송유인입니다.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16에 위치한 월봉서원은 근현대에 걸쳐 만들어진 전통 서원이지만, 대한민국 최후의 서원이기도 합니다. 화재선생(故 이우섭, 2007년 작고) 재세 시절에도 전통서원이지만 살아있는 현대의 서원으로 전국적으로 명망이 높았으며, 하세하신 이후에도 지금까지 여전히 그 존재의 가치가 높습니다. <서원인문학>·<서원고전학>·<서원-K클래식> 등도 전국적으로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옛 선비 독서문화 캠페인>으로 벌써 수백 차례나 한 해도 쉼없이 10여년 동안 열정적으로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양식 즉 <전통인문학>, <미래고전학>, <시그니쳐서원답사>, <서원과 함께하는 K클래식> 등 실로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실험적 시도는 오직 전통 공간을 시민과의 공유를 위한 월봉 측의 고심으로 판단됩니다.



화재선생은 김해의 전통적 측면에서 정신적 자존심이었습니다. 비단, 김해향교 문루에 걸려있는 선생의 작품 <김해향교 풍화루중수기>와 신산서원 <산해정중수기> 왕릉의 각종 기문과 시문 등 만을 봐도 그가 김해 내에서의 위상이나 전통적 의미에서 우리 시의 정신적 지주라는 말씀을 드려도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김해관련 수많을 작품들과 전국 유명 인물의 비문들만도 봐도 수천건이 넘고 있고, 45권 19책의 방대한 문집을 남긴 것만으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경남 일대에 서원, 재실, 전통 건축물이나 각 문중에 이 어른의 작품 한두 편이 없는 집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월봉서원은 전국 유림의 성금으로 설립되었지만, 화재 한 분의 열과 성으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굳이 월봉서원 배향된 분인 월헌 이보림 선생을 거론하지 않고, 화재선생을 얘기하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화재선생을 예거하면 월봉을 훨씬 빨리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러합니다. 월헌 이보림 선생은 우리의 지성사나 한국유학사에도 근대유학자의 거유로 거론되는 인물이시고 김해의 전통 유학자로 벌써 알려져 있고, 그의 모든 문집과 생가, 남긴 학술서적은 소중한 우리의 국가유산으로 경상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김해로서는 소중한 역사적 인물이고, 김해보다도 오히려 전주 광주 등 전라권과 충청권에 더 많이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유학 사상가입니다.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17년 2007년 화재선생 운구 행렬이 월봉서원을 발인해서 덕정사거리에 통해 반룡산 선영까지 왕복 6차로 1km가 넘었고, 만장 행렬이 200여 장이 앞장을 섰고, 천여 명이 넘는 조문객이 운구행렬에 함께 했습니다. 8월 그 뜨거운 여름날에 우리는 슬펐지만, 한편으로 당신이 ‘김해의 자존심’임을 ‘장유가 전통문화가 깃든 유서깊은 곳’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기에 정말 참람되지만, 명예롭기도 했습니다. 지상파 3사는 물론 일간지 주간지 등 모든 언론에 실시간으로 보도된바 있었습니다.



이후 월봉서원 주변일대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나마 고인의 넋을 기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당시 그 많은 기사와 사진, 기록물 유월장에 대해 김해시는 단 하나의 기록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1주기 때 유품 전시를 하긴 했지만, 보관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채 17년을 흘렀습니다. 그나마 한참이 지나서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자료와 사진을 정리한 사진첩과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그것도 김해시가 아닌 외부기간에서, 국립기관에서도 관심을 가지는데, 정작 김해시는 정책적 접근과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을 내어놓지 못했습니다. 새 집행부가 들어서며 월봉서원 종합 대책 보고서 등이 나오기도 하였고, 서원 주위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설정까지 해놓았으나 후속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예산타령만 하는 사이에서 유물 보관을 물론 주변환경까지 벌써 무분별하게 개발되었습니다. 각종 상업시설과 좁은 도로에 덕정마을과 월봉서원을 애워싸고 존립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7천여 건의 유물과 민속품의 도난과 화재 등의 위험을 제고하고, 문화적‧학술적‧교육적 가치로 김해 전통문화의 상징물로 부활할 수 있도록 유물전시관 및 교육 박물관 등 설립에 대해 김해시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벌써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절실할 때입니다. 더구나 김해시는 지금 가야문화가 세계문화유산 즉 국제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쾌거로 한껏 역사와 문화적 자존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그 찬탄과 자부 속에 또 어떤 그늘에 정책적 렌즈가 꺼져있는지 유의해야 합니다. 더구나 가야문화의 국제성은 월봉서원의 <현대적 글로컬화>시키는 것도 그 맥락은 같은 길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덧붙이겠습니다. 제 기억 정확한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일간지에 기사는 아니고 칼럼이었습니다. 화재선생이 고인이 되신 이후에 故노무현 전대통령과 비교하면서 ‘현대에 갓을 쓴 유학자’와 ‘농사 일로 밀짚모자를 쓴 농부’의 삽화가 인상깊은 칼럼이었습니다. 화재선생과 대통령님이 유사점을 서술하였는데, 끝까지 고의고관으로 갓을 쓰고 있는 것을 불굴의 의지로 현실을 극복해나간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하였고, 같은 시대 같은 고장 그것도 시골 즉 진영과 장유 즉 김해의 어느 시골 향촌에서 고향을 끝까지 지켰다는 점을 거론하였고, 무엇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세속과 시속에 영합하지 않고, 자기의 양심과 가치에 맞게 주변인의 손까락질을 받더라도 ‘불굴의 의지’로 ‘세상을 돌파’하는 그 기상을 언급했던 그 칼럼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시장님께도 간곡히 말씀드리고, 관계 부서에는 엄중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유물전시관 및 책 박물관 등을 포함한 <월봉서원 종합 대책을 수립>할 것을 다시 건의드리며 발언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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