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김수로왕릉 추향대제 제례복으로 갈아입었다. 제9대 숙왕의 제례를 모시는 대축이란 직책으로 홀을 받들었다. 제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유세차(維歲次)’라는 한문 말을 ‘오늘은’이라고 이해하면서 초헌관 앞에서 대축으로 제문을 소리 내 읽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친구들은 나를 놀렸다. “너는 김해 김씨도 아니고 영월 엄씨인데…?” 나는 반박한다. “세상이 변한 줄도 모르나!” 대한민국 문화재 행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친구는 “나는 김해 김씨인데 한 번도 화려한 관모를 쓰고 청색 제례복을 입어보지 못했는데….”라며 부러워한다.
봄과 가을에 개최되는 김수로왕릉 제례는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시민 참가자를 김해시가 공개 모집한다. 나는 제관으로 당당하게 선정되어 사전 교육과 과거시험에 합격한 듯 교지 같은 망장을 숭안전 참봉으로부터 엄숙하게 전달받았다.
작년 가락국 팔왕조 숭안전 추향대제 때 대축이라는 중책을 맡아 제례의 꽃이 되는 순간이었다.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마지막 한문 말 ‘감소고우(敢昭告于)’를 낮은 소리로 마무리하고 안도했다. ‘감히 아룁니다’라고 가락국 숙왕께 읊조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전국에서 모인 김해 김씨의 숙왕 제관들과 함께 음복을 나누고 헤어졌다. 내가 참여하지 않았을 때 복잡한 의식의 제례 전통을 답답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막상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대제를 통해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는 의식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춘향대제나 추향대제는 김해의 전통문화다. 제례의 전통을 내가 모른다고 내팽개칠 것이 아니라 공개 모집을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전통문화는 계승되고 발전된다고 생각한다.
붓글씨로 정성스럽게 쓴 숭안전 추향대제의 대축으로 임명받은 망장이 우리 집에 보물처럼 장롱에 보관되어 있다. 망장을 가문의 보물로 지정하여 붉은 보자기에 싸여 대축의 품위를 뽐내며 전통문화의 자긍심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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