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살아생전 못 배운게 한이 됐던지 늘 교육에 관심이 많았지요. 62년 같이 해로(偕老)하고 먼저 떠난 아내의 뜻을 기리고 싶어 장학금을 기탁하게 됐습니다.
83세 아내가 내 곁을 떠났다.
22살에 시집 와 61년을 함께 사는동안 아내는 언제나 현명한 아내이자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어릴적 동사무소 야간 한글 학교에서 한글을 익히고 간신히 초등학교를 나온 아내는 평생 못 배운게 한이 되었던지 자식 공부는 물론 지역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미처 뜻을 다 펼쳐보지도 못하고 먼저 세상을 등졌다.
아내를 보내고 허망함에 넋을 놓고 있을 때 5남매가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며 조의금 7천만 원을 놓고 갔다.
"앞으로 너희들이 갚아야 할 빚인데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라고 떠밀어 봤지만 아이들의 뜻은 완고했다.
어른이 되고 단 한 순간도 내 눈에서 떨어져본 적이 없던 아내의 빈 자리는 컸다. 며칠을 말 없이 먼 산만 보고 있다가 문득 5남매를 공부시키느라 새벽같이 일어나 밤 늦게 잠들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아내는 무엇을 원할까?' 주저할 겨를이 없었다. 아내가 생전에 사용하던 서랍 안에 들어있던 통장 몇 개에 있던 3,300만 원까지 모두 모아 집을 나섰다.
"장학금을 기탁하고 싶습니다."
주섬주섬 봉투를 꺼내 장학금 1억 원과 이웃돕기 성금 100만 원을 김해시에 건냈다.
"성적은 우수한데 가난해서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고 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가끔 친구들과 이용하던 대한노인회 김해시지회 무료 급식소에 100만 원, 천 원의 행복 밥집에도 100만 원을 전달했다.
장학금과 성금을 전달하는 자리에 아내인 故 이윤선이 동행하며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흐릿해졌던 아내와의 추억들이 선명하게 떠 오르는걸 보며 아내의 동행을 확신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조용히 아내에게 속삭였다.
"꽃들도 다 피는 때가 있듯이 사람도 누구나 꽃을 피울 때가 있다는데 당신은 하늘나라에서 그 꽃을 피우게 되는구려. 당신 장학금 받고 열심히 공부할 아이들이 모두 잘 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ㆍㆍㆍ여보, 안녕히 잘 가시오ㆍㆍㆍ"
위의 기사는 서예가 벽암 허한주 선생과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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