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포토에세이 참가작품
분산성 동화(이병열)
가을이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하는 어느 날, 아버지와 딸은 어느 산책로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산길의 한적한 분위기와 가을 하늘 안의 단풍에 취해 흙길을 밟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하늘 위를 걷듯 가볍고 평화로웠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도착한 곳은 석벽을 두른 산의 정상이었습니다. 전망을 내려다보며 딸이 아버지에게 먼저 말하였습니다.
“아빠, 여기가 분산성의 봉수대라는 데야.”
“뭐? 어디라고?”
“분산성. 김해의 전망이 보이는 곳.”
분산성은 옛 가야의 근거지로 추정되는 곳이었습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분산성의 아주 오랜 역사와 신비로운 설화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는 연거푸 되물어보지만, 딸은 귀찮아하지 않고 그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답문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딸은 석벽을 따라 한동안 말없이 걸었습니다. 서로는 말이 없었지만, 손을 맞잡고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깊은 사연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딸은, 가정의 건사를 위해 끊임이 없던 노동으로 심하게 떨리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성벽 위를 사붓사붓 걸었습니다. 장구한 역사의 시간이 스며있는 분산성은 그 옛날 그대로의 고풍스러운 정취를 자아내며 두 사람에게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을 내어주었고, 두 사람은 성벽의 돌담 위를 걸으며 맞잡은 손으로 서로에게 가진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갑자기 들뜬 마음에 딸이 아버지의 손을 끌고 외쳤습니다.
“아빠, 아빠! 여기가 포토존이야. 여기서 우리 같이 사진 찍자.”
“포 뭐?”
“포토존. 사진 찍으면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야.”
아버지와 딸은 그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었고, 그러고 나서도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나란히 앉아 오랫동안 김해의 전망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포토존 입구에서 바라본 두 사람의 뒷모습은 한없이 따뜻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멈춘 분산성에서는 그렇게 오래도록 부녀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