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유적지> 구산동고분군

가야유적 발굴자료 발굴명, 소재지, 지정여부, 참고문헌, 주요유물, 조사기관, 조사일지, 조사유구
발굴명 구산동고분군
소재지 구산동 63-64번지, 31-2번지 일대
지정여부 사적 제75호(지정일자-1963년 1월 21일)
참고문헌 우메하라 세이지(梅原末治), 조선고대의 묘제 발행처-국서간행회 발행일자 : 1972년 6월 20일 김해구산동고분(부경대학교박물관 연구총서 제5집) 발행기관-부경대학교 박물관 발행일자-2000년 8월
주요유물 토기-단경호·대부완·뚜껑·고배·연질옹 철기-철부·낫·유자이기·살포·철정·불명철기 장신구-귀걸이·띠고리장식품
조사기관 부경대학교 박물관
조사일지 1997년 6월 23일 ∼ 7월 30일
조사유구 횡혈식석실묘 2기, 석곽 2기, 이외 다수의 고분이 있음

분성산의 서남쪽 기슭에 위치하는 구산동유적은 김해지방의 고분 중에서는 드물게 봉토분(封土墳)의 형태로 남아 있어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으며, 현재 허왕후릉과 김해향교 뒷편의 백운대 구릉에 걸쳐 크고 작은 고분이 다수 산재해 있습니다. 이 가운데 1기는 1919년에 발굴되어 '삼산리 1호분'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1997년에 부경대학교 박물관에서 백운대 구릉에 위치하는 또 다른 1기가 발굴되었습니다. 조사된 2기의 고분은 모두 횡혈식석실묘인데, 이 중 봉분전체가 조사된 백운대 구릉의 고분은 주석실과 호석 사이의 봉토내부에서 유물만을 매납한 부장석곽 2기와 배묘 1기가 확인되었습니다. 부장곽들은 주석실의 추가장(追加葬)과 관련하여 각각 시기를 달리하여 만들어 졌음이 주목됩니다. 김해 구산동고분군은 6세기 후반 이후에 형성된 김해의 중심고분군이며, 금관가야 멸망 이후의 김해지역에 남아 있는 금관가야 왕족 후예들의 고분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홍보식]
구산동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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