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는 가락국(서기 42년 ~ 530년) 때 수로왕의 처남인 허보옥이 장유산에서 절을세우고 입산하시어 속세로 돌아가지 아니하므로(장유불반) 허보옥을 장유화상이라고 하였으며, 장유는 여기서 연유한 지명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능동마을에 가락국 임금의농이 있었다하여 향소부곡이라는 특수마을의 하나로 제을미향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장유촌, 유하촌으로도 불렀다 한다.
조선중기 때는 유동야면으로 고치고, 순조 10년(1810)에는유하면이 되었다가 고종 16년(1879) 다시 유등야면으로 돌아갔다가 고종 22년(1885)에 장유면으로 개칭되었다.
고종25년(1888)에 장유면(8리 부곡, 유하, 내덕, 무계, 대청, 삼문, 신문, 관동) 과 수남면(4리 을하, 장유, 응달, 수가)으로 나누었다가 1914년 일제때 장유면과 수남면이 다시 합병되어 장유면이 되었다.
이병태, 2002, 김해지리지(국역본), p145
장유면(長有面)의 ‘有’자는 장유화상(長遊和尙)의 ‘遊’자와 다른 한자를 쓰고 있는데 언제부터 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유등이 또는 유등야라 불리어 이것이 면의 명칭이 되기도 하였으며, 1914년 유하리에 상후포 하후포 하손과 무계리일부를 병합하였다.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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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柳下) | 버등이라 부르며, 유하리의 본마을임 |
하손(下遜) | 유하의 동북쪽 산밑에 있는 마을인데 유하교를 사이에 두고 있다. |
후포(後浦) | 뒷개라고 부르며 상후포와 하후포로 나눈다. 유하리 산넘어 뒤쪽에 있으며, 내삼천가에 있다. 옛날에는 이 앞은 모두 갯벌이었다. |
옛날 용덕리(龍德里)였는데 철종(哲宗) 3년(1852년) 덕촌리(德村里)라 부르다가 1914년 유하리(柳下里)의 일부를 병합(倂合)하고 내덕리가 되었다. 조만강(潮滿江)으로 칠산서부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옛날부터 둑이 있었기 때문에 덕(德)마을이라고 하는 것이다.(德은 언덕이나 둑을 말한다) 1988년 9월 정천교(正川橋)에서 무계리까지 도로포장이 완공 되었다.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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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덕(內德) | 안 용덕으로 용덕리의 안쪽에 있기 때문 |
외덕(外德) | 바깥 용덕이며, 영조 35년(1759)외덕이 되었다. |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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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釜谷) | 가마실 또는 가매실이며, 동쪽으로 주석산, 동남쪽에 사리산이있다. |
죽곡(竹谷) | 대골이며, 부곡서쪽이며, 영조 35년(1759)에 외덕이 되었다. |
냉정(冷井) | 진례 주촌 2면의 경계가 되는 곳이며, 지금의 찬물嶝에 옛날부터 찬물샘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
대청천(大淸川)과 핏내등 여러 개울이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1914년 광석암(廣石岩)을 합하여 무계리가 되었다. 신문리(新文里)와의 사이에 1937년 무계교(茂溪橋)를 김해시와의 사이에 1934년 정천교(正川橋)가 가설된 뒤 신문리에 있었던 신문장(新文場)도 이곳으로 옮겨지고, 1914년 장유면소(長有面所), 1919년 주재소(駐在所), 1922년 보통학교(普通學校), 1926년 우편소(郵便所), 1931년 금융조합(金融組合), 1933년 버스주차장(駐車場)등이 여기에 위치하게 됨으로서 김해시 서부의 중심지가 되었다.
中峰寺의 산문이 있었다고 사문리였으며, 三隱,三恩,斯文리의 別稱도 있었다. 1914년 능동과 월산동을 倂合하였으나. 1995년 택지개발로 인하여 대단위 주택단지가 들어서 능동,월산마을은 옛모습을 찾아볼수 없다.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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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陵洞) | 중봉산아래에 있기 때문에 철종때 는 중리라고 불렸다. |
신문진이 있었기 때문에 신문리였으며, 신문장도 이곳에 있었다. 신문진이 熊川縣으로 이설되어 간 뒤에 신문으로 改稱된 듯하다. 1914년 봉림리 용산리 및 삼문리가 각마을을 倂合하여 신문리가 되었다.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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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新文) | 상봉림과 용산사이에 있는 본마을이며 옛날 신문, 갓등으로 불렀다. |
용산(龍山) | 반룡산아래에 있는 마을이며, 옛 이름은 진솔인데 신문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앞들이 바다였고 그뒤 갯벌과 갈대밭으로 변한것이 농토로 개발되었다. |
반룡산(盤龍山) | 龍이 도사리고 있는 모양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산마루가 시루같다고 시루봉이라고도 한다. |
범동포(凡東浦) | 옛날 범등개로서 배를 띄워 출발하는 포구였다. 신문리 동단의 조만강가에 있는 마을이므로 녹산수문이 생기기 전에는 여기에서 장유면 농산물 수산물을 배에 싣고 부산까지도 갈수 있었다. |
상봉림(上鳳林) | 신문리의 가장 북쪽에 있으며 대청천으로 무계리와 접경한다. 옛날에는 창원부로 넘어가는 상점령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었다. |
하봉림(下鳳林) | 봉림리의 아래쪽이며, 반룡산아래에 자리잡아 장유중학교가 1948년 생기고, 농지개량 조합의 양수장이 마을 앞에 있다. |
불모산·용지봉·추월산아래에 있어 여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기 때문에 대청천·대청리라고 한다. 1914년 계동과 상점을 병합하였다. 장유사로 올라가는 계곡과 장유폭포가 유명하다.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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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大淸) | 대청천가에 있는 본부락인데 서남쪽은 가오야들, 남쪽은 갱변이라고 부른다. |
계동(桂洞) | 추월산아래에 있는 마을이므로 月中桂樹의 뜻이다. |
상점(上店) | 잿점이라 부른다. 창원시로 넘어가는 재에 있는 점이라는 뜻이다. 상점도 높은 고개위에 있는 점이라는 뜻이다. |
불모산(佛母山 801m) | 김해시 서부의 가장 높은 산이며 가락국때 허왕후의 칠왕자가 모두 成佛하였고 后를 불모로 모셨기 때문에 불모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용지봉(龍池峰 713m) | 장유면과 진례면 및 창원시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 龍蹄峰이라고도 불러, 조선시대에 祈雨壇이 있었다. |
장유사(長有寺) | 가락국 허왕후의 아우 허보옥은 아유타국으로부터 后를 수행해와서 부귀를 부운과 같이 보고 이산에 들어와 불교를 설경하기 위하여 들어 왔다가 길이 노닐면서 돌아가지 않았다고 장유 화상이라 부르고 그뒤 절을 장유사라고 한것이니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처음 전래되었던 가락불교의 요람이다. 장유사 뒤쪽에 장유화상 사리탑이 있다. |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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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촌(花村) | 반룡산의 남쪽에 있으며 뒷산을 花山이라하고 마을은 春化谷이라 불렸다. 봄에는 꽃이 어느 곳보다 먼저 피는 곳이며 春也洞이라고도 했다. |
죽림(竹林) | 赤項驛이 있었던 마을이므로 역말이라고도 불렀는데,1914년 대밭이 많다고 죽림으로 고쳤다. |
덕정(德亭) | 옛날 덕정리이며, 전주이씨가 이주해와서 富者와 碩學이 나와 이름이 알려졌다. 영남의 巨儒였던 李普林은 寓慕하는 明輝祠를 아들 雨燮이 建造하였다. |
신안(新安) | 옛날 그릇을 굽던 곳이므로 沙器店이라고 하다가 純組때 신안으로 개칭되었다. |
팔판산(八坂山 798m) | 김해시와 진해시를 경계로 이루고 있는 명산으로 지금은 국방상 요지가 되어있다. 진해시 천자봉으로부터 북동으로 달려간 곳에 팔판동이 있는데 판서8명이 날 명당자리가 있다고하여 팔판산이라 한것이다. |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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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하(栗下) | 밤내재 밑에 있는 마을로 율리라고 하였다. |
구관동(舊寬洞) | 순조초까지도 관동이라 불렸다. 땅티라고도 하며, 서남쪽은 윗골 앞쪽은 배나무골이다. |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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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長有) | 본장유이며, 지금 台亭山이 長遊山이므로 장유화상이 처음 이곳을 찾아 절을 세웠다고 한다. |
모산(牟山) | 장유의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독뫼의 모양이 소가우는 形局이므로 소울 모(牟)자를 붙였으며, 이소는 율하리 구시골을 보고 울고 있는 것이다. |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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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應達) | 본부락인데, 마을이 위응달과 아랫응달로 나누어지고 있다. |
태정(台亭) | 가락시대에 왕의 胎를 묻었다는 태봉이 있기 때문에 胎葬里라고 하다가 이것이 台長里,台亭里로 고쳐진 것이다. |
용곡(舂谷) | 태정산의 세 골짜기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므로 수남면 삼곡면이라고 하다가, 옛날부터 물레방아가 있었기 때문에 建陽2년(1897) 용溪里로 고치고 한때 龍溪里라고도 하였으나, 1960년 舂谷으로 改稱되었다. |
지 명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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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水佳) | 수가리의 본마을으로서 윗수가와 아랫수가로 나누어져 있다. 뒤에는 금병산이 응달리에서 시작되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에는 조만강이 흐르고 있다. |
장전(長田) | 탑동과 죽곡사이에 길다랗게 밭이 많은 마을이며, 앞들은 대우지, 물간, 성성개라고 부르고 있다. 1998년 부산광역시 강서구에서 장유면에 편입되어 현재는 김해 부산 공동 경마장 부지로 편입되었다. |